성경본문연구

  • 양육 및 제자훈련 >
  • 성경본문연구
히브리서 연구 (1_히브리서 1장 주해)
김영권 2016-04-04 추천 1 댓글 0 조회 864

히브리서 주해 (1)

 

1. 본문주해(1:1~5)

 

본문개관

히브리서는 신약성경 중에서 가장 정교하고 세련된 문체로 쓰여진 글이다. 전통적으로 히브리서는 서두의 인사말이 생략된 편지로 간주되어 왔으나, 사실상 설교에 더 가깝다. 그래서 저자대신에 설교자,’ ‘독자대신에 청중이라는 말을 사용하고자 한다. 히브리서의 설교자는 히브리서를 가리켜 권면의 말(호 로고스 테스 파라클레세오스 λγος τς παρακλσεως,13:22)’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주후 1~2 세기에 있었던 특정한 형태의 설교를 일컫는 말이었다. 1797년에 J. Berger가 히브리서는 설교라고 주장한 이래로 오늘날 히브리서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다. 본 단락은 히브리서의 머리말에 해당한다.

 

절별 주해

1: 선지자들을 통한 계시

옛적에(팔라이 πλαι) 선지자들을(프로페타이스 προφταις) 통해 조상들에게(파트라신 πατρσιν) 주어진 여러 번에 걸친(폴뤼메로스 πολυμερς) 그리고 다양한 모양으로(폴뤼트로포스 πολυτρπως) 주어진 계시는 아들을 통해 마지막 때에 주어진 한 번의 계시와 대조된다. 그러나 말씀하시는 분은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벵겔과 같은 학자는 히브리서에서 선지자들의 역할이 크지 않기 때문에 천사들을 통해서(앙겔로이스 γγλοις)”라고 말씀하셨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에 1절에서 두드러지게 사용된 헬라어 알파벳 π로 시작하는 두운법이 깨어진다. 여기서 선지자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예언서를 기록한 좁은 의미의 선지자만이 아니라 과거에 하나님의 대언자로 하나님의 뜻을 전한 구약의 모든 인물들을 포함한다. 그러면 그들을 통해 주신 계시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렸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을 통해 주신 말씀은 오늘날의 성도들이 반드시 들어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3:7~11; 4:7; 12:5~7), 그리스도 안에서 그 내용들이 성취되었으며(8:8~13),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1:5~13; 2:6~8; 4:12~13; 7:1~3; 10:5~8). 과거의 계시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 아니라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것이었다.

 

2절 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계시

이러한 과거의 계시의 다양성과 불완전성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유일하고 완전한 계시와 대조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날 마지막에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다른 계시가 필요하지 않다. 이 종말론적인 이해는 히브리서에서 권면에서 뿐 아니라 구약에 대한 해석을 다루는 부분에서 아주 중요하다 (3:7~4:11; 8:8~12). 아들을 통한 계시가 완전하고 최종적인 두 가지 이유를 설명한다. 첫째 그는 만물의 상속자다. 아들 됨과 상속은 불가분의 관계다. 그는 영원 전부터 아버지의 영광을 누리신 분이다. 상속자로서 예수의 지위는 하늘 보좌 우편에 앉는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그의 형제들과 함께 상속을 누리는 것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 초월적인 지위 때문이다(1:14; 3:1; 6:17; 9:15; 12:25~29). 둘째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창조하셨다.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를 창조시의 말씀과 동일시하고 있다(1:3; 11:3; 1:16). 그러기에 아들을 통한 계시는 천사들(1:4, 5, 14; 2:2~3, 18)이나 모세(3:1~6; 11:23~29, 39)나 여호수아(3:7~4:10)나 아론(5:4; 7:4~19)을 통한 다른 계시보다 훨씬 더 월등하다.

 

3절 그리스도 찬송시

이 구절은 형태나 내용에 있어서 신약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에 대한 다른 찬송시와 유사하다(2:6~11; 1:15~18; 요일 1:1~18; 딤전 3:16; 벧전 3:18~19, 22).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아파우가스마 테스 독세스 παγασμα τς δξης)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산한다. 태양이 빛을 발산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계시로서 하나님의 능력과 존재의 빛을 발산하신다. 또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카라크테르 테스 휘포스타세오스 아우투 χαρακτρ τς ποστσεως ατο)이시다. χαρακτρ는 신약성경 전체에서 이 구절에서만 유일하게 사용되는데, NIV 성경에서는 represention(표상)으로, 다른 여러 영어성경들에서는 이 단어를 imprint(각인)로 번역한다. 각인은 주화나 인봉에 찍힌 자국을 말하는데, 원래의 주형에 정확하게 일치하기에 파괴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존재와 본질을 가장 완전하게 나타내시는 분이기다. 만물이 그로부터 생겨나게 했던 그리스도는 창조와 구원의 힘 있고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 이 구절에서는 지상과 천상에서의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해 적고 있다.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죄를 정결케 하는 사역을 감당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광과 본질을 함께 지니신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편하게 구원을 이룬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사람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이 의미는 히브리서 8~10장에서 자세하게 다루어진다. 그리스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구원의 과업을 다 마친 후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이것은 시편 110:1절을 암시하는 것인데, 이 시편 구절은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거나 암시된 구절이다. 시편 110:1절은 히브리서에서도 자주 인용되었다(1:3, 13; 5:6, 10; 6:20; 7:3, 11, 15, 17, 21, 24, 28; 10:12; 12:2).

 

4-5절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이름

그리스도는 천사보다 훨씬 뛰어나다. 왜냐하면 그분은 천사들보다 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크레이톤 κρεττων)”은 신약성경에서 19번 나오는데, 히브리서에서만 13번 사용되었다. 이 단어를 통해서 설교자는 아들을 통해 이루어진 새로운 구원의 계시가 이전의 것보다 더 우월한 것임을 잘 드러내고 있다(6:9; 7:7, 19, 22; 8:6; 9:23; 10:34; 11:16, 35, 40; 12:24). 그러면 그리스도가 얻은 이름은 무엇일까? 그것은 2절에서 언급된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이다. 그리스도는 세례를 받을 때(1:11 참고), 부활을 통해(1:4), 승천을 통해 아들로 선포되었다. 그러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은 그의 삶의 어떤 시점부터인가? 설교자는 이 물음에 대해 명확한 답을 준다.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선재하는 아들이셨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성실히 이루실 때 사역의 중요한 순간마다 다시 아들이심이 확증되었고 높임을 받은 아들은 그의 영광스러운 상태로 복귀하신 것이다.

 

 

2. 본문주해(1:6~14)

 

본문개관

이 단락에서는 그리스도와 천사들을 비교함으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증명한다. 그리스도의 우월성의 근거는 구약성경인데, 두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 첫째는 한 구절을 인용하고 그것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하지 않고, 일곱 개의 구약성경 구절들을 연쇄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둘째는 설교자는 자신이 인용한 구약의 출처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히브리서의 독특한 점인데, 출처를 자세히 밝히는 것은 4:7절의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라는 부분밖에 없다. 그 외는 2:6절에서 누군가가 어디에 증언하여 이르되,” 3:7절에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3:15절에서 성경에 일렀으되,” 4:3절에서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이,” 5:6절에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7:17절에서 증언하기를과 같이 분명하게 인용출처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 특히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방식으로 구약을 인용하는 구절이 많다(1:5~14; 4:2~4; 5:5~6; 8:8). 이런 점에서 보면 설교자에게 구약성경은 과거의 어떤 입증자료가 아니라 현재에 살아있는 증언이다. 그리고 그것을 직접 선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럼 왜 그리스도와 천사들을 비교할까? 이 단락만을 놓고 보면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이어지는 권면 단락인 2:1~4절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있어서 그리스도와 천사는 같은 역할을 감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사와 그리스도 둘 다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감당했다. 그러나 둘 사이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천사는 하나님의 종으로 그 역할을 감당했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일을 감당했다.

 

절별 주해

6절 아들은 경배의 대상

6절은 5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5절에서 설교자는 구약성경 중에서 메시아와 연관시켜 이해했던 두 구절, 즉 시편 2:7절과 사무엘하 7:14절을 인용한다. 그런데 인용하는 방식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처럼 한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그리고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에게 아들이 되리라고 말하신 적이 있는지 묻는다. 이 질문에 독자들은 당연히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다고 답할 것이다. 이 구절에서 인용되는 두 구절은 원래 문맥에서는 이스라엘의 왕권과 관련이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왕으로 등극하게 되면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 것으로 이해했었다. 첫 번째 인용문인 시편 2:7절은 왕과 관련된 시(royal psalm), 왕이 되면 이 시편을 읽으면서 적들로부터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 것을 확신하곤 했다. 두 번째 인용문인 삼하 7:14절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전하는 나단 선지자의 신탁의 일부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이 그의 왕위를 계승할 것이고 그 왕위는 영원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다. 시편 2:7절은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을 때(3:16~16; 1:10~11; 3:21~22)와 그리스도의 부활(13:33~34)과 관련해서 인용되었다. 삼하 2:7절은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사용되기 보다는 성도들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고후 6:17; 21:7). 요약하면 하나님은 천사들에 아들이라 말하신 적이 없다. 6절은 그러나(δ)”라는 접속사로 시작한다. 천사들에게 자기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이 아들을 다시 세상에 들어오게 하실 때에 천사들에게 아들에게 경배하라고 명하신다. 이것을 통해 천사보다 그리스도가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학자들은 이 구절은 시편 97:7이나 신 32:43의 인용이라고 생각한다.

 

7~9절 천사와 아들의 차이

이 구절들에서 두드러진 헬라어 구문적 특징은 ...(μν...δέ)’의 사용이다. 이 구문은 대조할 때 자주 사용되는데, 영어로는 ‘one the one hand ... on the other hand’, 한편으로 ... 다른 한편으로이다. 이것을 살려 우리말로 번역하면 7절에서 한편으로 천사들에 관하여는”, 8절에서 다른 한편으로 아들에 관하여는이 된다. 이것을 통해 히브리서 설교자가 천사와 그리스도를 분명히 대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절에서는 시편 104:4절을 인용한다. 히브리어 원문은 바람과 불의 자연적인 요소들을 하나님의 사자들로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설교자는 헬라어 번역 성경인 칠십인경(LXX)을 따르고 있는데, 천사들을 하나님을 보좌하는 바람과 불꽃으로 회화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러한 이해는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천사들은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존재라는 의미다. 8~9절에서는 시편 45:6~7절을 인용하는데, 히브리서에서 특이한 점은 시편에 나오는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다윗의 계보를 잇는 왕들에게서 결코 완전하게 이루지 못했던 것이 아들에게서 완전하고 참된 것으로 드러난다. 그의 보좌는 영영하고 그의 홀은 공평하다. 그는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한다.

 

10~12

이 구절에서는 시편 102:25~27절을 인용한다. 원래 이 시편은 고난 중에 있는 성도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기도다. 이 기도를 통해 인생은 덧없이 짧고 하나님은 영원하다고 고백한다. 땅과 하늘과 같은 자연도 끊임없이 변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신 분이시다. 모든 피조물은 오래 된 의복처럼 낡아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분의 통치는 영원할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시편의 가 바로 그리스도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통치는 영원하다.

 

13절 천사는 보좌 우편에 앉지 못함

1:3절에서 짧게 언급되었던 시편 110:1절의 전문이 이 구절에서 인용되고 있다. 이 구절에서는 시편 110:1절만을 인용하지만, 히브리서의 다른 구절들에서 시편 110:4절도 인용한다. 신약성경에서 시편 110:4절을 인용하고 있는 책으로는 히브리서가 유일하다. 시편 110:1절을 통해 이스라엘 왕들에게 주어졌던 적들이 그의 발등상이 될 것이라는 약속은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약속이 천사들에게는 절대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설교자의 수사적인 물음에 독자 모두는 아니오라고 분명하게 답할 것이다.

 

14절 천사들은 섬기는 영

설교자는 앞에서 구약성경의 일곱 구절을 들어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입증했다. 이 구절에서는 최종적인 진술이 등장한다. 천사들은 어떤 존재인가? 그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우편에서 만물을 통치하는 아들과 아들 밑에서 섬기는 역할을 감당하는 천사는 비교대상이 못된다는 것이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히브리서 연구 (2_히브리서 2장 주해) 김영권 2016.03.21 0 728
다음글 히브리서 연구 (히브리서 개요) 김영권 2016.03.15 0 1261

151862 TEL : 02-878-1336 지도보기

Copyright © 대서울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2
  • Total165,043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