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개관 - 제사와 언약]
1. 출애굽기의 연속으로서의 레위기
레위기의 출애굽기와의 관련성은 많이 지적되곤 한다. 특히 출애굽기의 후반부(25-40장)가 레위기와 관련된 것에 많은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러나 그들이 다 같은 P-문서에 속하기 때문이 아니라 두 부분이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때문에 관련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성막에 대한 것과 레위기에서 말하는 제사에 대한 것은 제사장적 관심을 나타내는 P-문서로 통일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관계하는 것은 출애굽기의 성막이 별개의 어떤 제사장적인 건축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레위기는 그 성막을 중심하여서 이루어지는 일을 말하는데 이것은 이미 맺은 언약을 어떻게 유지하고 새롭게 하고 갱신하고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발전시킨 것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전편에서 언급했듯이 출애굽기의 전반부(출1-24)가 후반부(출25-40)와 시내산 언약을 이루는 일로 하나의 책이 되는 것과 같이 출애굽기의 후반부와 레위기가 시내산 언약을 유지하는 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출애굽기에서 준비된 것은 성막을 중심으로 하는 기구들이다. 이제 이 기구들이 다 준비되고 난 뒤에 그 기구들 속에서 행해지는 행동들이 무엇이냐가 관건인데 그 행동들이 바로 레위기에 기록되었다. 성막 자체의 건조에 관심 있는 것이 출애굽기라면 성막에서의 행동에 레위기의 관심의 초점이 모아져 있다. 레위기의 이러한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이 모든 명령들이 주어지는 장소인 성막, 즉 "회막"이라는 점이다 (레1:1, 9:23). 회막 즉 "모이는 장소"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만나는 장소이다. 이 회막이 이미 성막이 건조되기 전에 모세에 의해서 잠정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출33장) 이제 성막이 건조되고 난 뒤에는 그것이 바로 회막으로도 불리어진 것이다 (출40장). 이제 레위기 전체를 통하여 그 성막, 회막에서 이 모든 명령이 주어졌고 시행되었다.
시간적으로 보면 출애굽기에서 성막의 준공된 시간은 출애굽 제 2년 1월 1일(출40:17)이다. 그런데 다음의 책인 민수기의 기록시간 출애굽 제 2년 2월 1일(민1:1)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사건은 한 달 내에 일어난 것으로 레위기는 보고한다. 그 다음의 사건은 민10:11로 이스라엘이 드디어 시내산에서 사막여행을 계속하였고 그 때가 출애굽 제 2년 2월 20일이다.
2. 민수기와 연속으로서의 레위기
레위기의 상황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민10:10까지 계속된다. 그 속에서 일들이 다루어지는 시간은 레위기가 한 달이고 민1:1-10:10가 20일이다. 그런데 민10:11-20:21까지의 내용은 38년 동안 벌어진 사건을 담고 있다. 그리고 내용적으로도 민1:1-10:10은 그 이후의 민수기의 역사보다 레위기의 법과 더 관계되어 있다. 그리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민1:1-10:10은 레위기의 규범과 거의 일치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민수기 1:1-10:10까지는 레위기에 속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결론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오경의 실제적인 연속성을 알게 하는 것이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스라엘과 맺음으로 이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씨와 땅이라는 두 약속을 근간으로 이루어졌다. 출애굽기에서 민수기까지는 약속된 언약의 어떻게 수립되며 그 하나님 나라의 씨가 어떻게 마련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신명기는 하나님 나라의 또 다른 약속인 땅에서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결국 레위기 전체는 이 씨가 어떻게 하나님과 언약을 유지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3. 레위기 전체의 구조
오경의 다른 책에 비하여 레위기의 구조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레위기 전체는 다음과 같은 구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주요부분 A] 제사에 대한 규율 (1-7장) / 제사장에 대한 규율 (8-10장)
[주요부분 B] 육체적 도덕적 불순 (11-16) / 육체적 도덕적 거룩함 (17-26)
[부록] 서약에 대한 규율 (27장)
레위기는 출애굽기의 연속이며 민수기에서 계속해서 유사한 내용이 다루어질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서언, 혹은 결론 부분이 없다. 다만 27장만이 약간 따로 떨어져 있을 뿐이다. 이것은 레위기의 결론이 아니라 일종의 부록(appendix)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레위기는 별도의 책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는 두 책 사이에 있는 책이므로 그 자체가 모두 본론이라고 할 수 있다.
레위기 전체는 법을 다루고 있지만 아주 드물게 사건 자체가 언급되었다. 그중에 특이한 것이 레10장에 나타난 아론의 아들의 죽음 사건이다. 그러나 이것을 별도의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은 법규를 말하다가 중간에 사건을 말하고 다시 법규로 돌아가서 언급하는 출애굽기의 태도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즉 출 25-31에서 성막건조에 대한 명령을 소개하다가 중간에 이스라엘의 언약파괴의 사건이 출 32-34장에 기록되었고 이어서 출 35-40장까지 성막건조 역사를 소개한다.
4. 거룩의 문제
성구사전들을 찾아보면 거룩(명사), 거룩한(형용사), 거룩하게 하다(동사) 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 레위기이고 그 중에서 19-27장이 가장 뚜렷함. Mandelkern의 성구사전을 보면 q-d-sh의 어근을 가진 것 단어들이 레위기에서 총 20퍼센트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으로 거룩이 레위기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거룩이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믹6:6-8("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은 오경의 근본적인 목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 목적은 제사행위 자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사의 근본원리를 말하고 있다. 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하나로 요약해서 주는 명령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이다 (레19:2). 여기서 우리가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거룩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의 거룩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대명제인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이 상호 관련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면 하나님의 거룩이 무엇인가 ? 하나님의 거룩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속성 자체로 나타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언약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거룩은 세상의 모든 타락하고 더러운 어떤 것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을 나타낸다. q-d-sh의 본래적인 의미는 분리하여 내는 것에 있는 것과 일치한다. 모든 부정적인 것에 완벽하게 대비된 깨끗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또 하나 언약관계에서의 거룩함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한 언약을 지키시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스라엘만을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segullah, 출19:5)으로 삼으신 약속을 지키시는 태도를 거룩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오해될 수 있지만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말하면 언약상대방으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정절을 지키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약속에 걸맞는 보호를 이방의 공격에 대해서 이스라엘에게 베풀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온갖 축복을 선물로 내려주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의 측면인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거룩의 측면이 두 가지이듯 이스라엘도 두 가지 측면을 가져야 한다. 이런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서 세상의 모든 악함과 타락에서 자신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을 지켜야 한다. 즉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삶의 모든 것이고 다른 어떤 신들과 개념을 추호도 하나님으로 삼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삶의 모든 면의 주인이 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거룩인 것이다.
이제 레위기에서 거룩이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 나타나는 것을 살펴야 하는데 이것을 혹자는 삼차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G.J. Wenham, Leviticus (NICOT), pp.19,26) : 거룩 - 깨끗함 - 더러움. 보통 이스라엘인은 단순히 깨끗함의 상태에 있는데 그가 성전에서의 섬김을 위하여 거룩하게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가 보통의 상태에서 타락하면 정결하게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이론은 여러 지 증거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성소가 성전뜰 - 성소 - 지성소로 구분된 것이기도 하지만 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다.
5. 제사들
레위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제사에 대해서 살펴볼 때가 되었다. 제사에 대해서는 특이하게 두 번 언급되었다 : 1:1-6:7, 6:8-7:38. 그런데 1:1-6:7의 경우는 제사를 드리러 나오는 사람(제사인, 백성)이 알고 행해야 할 것을 나타낸다 (1:2 '이스라엘'). 그리고 6:8-7:38의 경우는 제사를 주제하는 사람(제사장)이 알고 행해야 할 것을 나타낸다 (6:9 '아론과 그 아들들'). 첫 번째 것은 백성을 위한 것이므로 일반백성에 대한 교훈적, 교육적인 목적을 가진다. 그러나 두 번째는 제사장을 위한 것이므로 제사장 지침서적인 목적을 가진다. 그런데 이 두 경우에 있어서 제사들의 순서가 조금 다르게 되어 있다 :
1:1-6:7 번제 - 소제 - 화목제- 속죄제 - 속건죄
6:8-7:38 번제 - 소제 - 속죄제 - 속건제 - 화목제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번제와 소제가 같이 무리지어 이해되고 속죄제와 속건제가 하나의 무리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속죄제와 속건제가 하나로 이해되는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그리고 화목제가 별도의 항목으로 이해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각 제사의 의미를 살펴보자.
(1) 번제 (ohlah)
제물이 죽여지고 완전히 태워 없애졌고 이것은 하나님의 완전성, 성결성과 함께 인간의 죄는 죽음으로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을 나타낸다.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철저한 진로를 표현한다. 또한 동시에 번제의 히브리어인 ohlah가 가지는 의미는 ('올라가는 것' ascending) 하나님께 완전히 드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2) 소제 (minhah)
곡물로 드려지는 이 제사의 비종교적인 의미는 '상납물'(present, tribute)이다. 이 의미가 어느 정도 구약에도 있는 것 같다. 즉 신실한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의 선물을 주로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헌신과 봉사의 의미가 담긴 것이다.
(3) 화목제 (shelamin)
이 제사에 대한 다양한 어의학적인 추론이 가능하지만 잘 알려진 히브리 단어인 샬롬 (shalom)의 복수형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사는 드리는 쪽(제사인)과 받는 쪽(하나님)의 상호관계가 '완전'한 '평화'로 유지되는 것이 목적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제사는 제사가 드려져도 그 중의 일부가 다시 제사 드리는 쪽으로 되돌려져서 먹을 수 있었던 대표적인 제사였고 고기를 잘 먹을 수 없었던 고대 이스라엘에 귀중한 식사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 제사는 대부분 기쁨을 누리는 경우와 관련되었다.
(4) 속죄제 (hattaht)
이 단어의 어원을 따라서 '죄제'(sin offering)으로 일반적으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제사도 죄와 관련되기 때문에 이 제사의 실제적인 의미인 '죄를 씻는다, 속한다'는 뜻을 가진 '속죄제'(purification offering)으로 대부분 번역한다 (Wenham, Milgrom). 이것은 죄가 남긴 오염과 타락을 씻어내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 이 제사의 주요 목적이다. 가장 중요한 예식의 내용은 피를 바르거나 뿌리는 것이다. 지도자나 평민의 속죄의 경우는 성막뜰에 있는 큰 번제단의 뿔에 피를 바르고 제사장의 속죄의 경우는 성소(the holy place)에 있는 향단의 뿔에 피를 바른다. 그리고 일년 일회 벌어지는 대속죄일의 제사에는 대제사장이 지성소(the holy of holies)에 들어가서 법궤의 시은소에 바른다. 무엇보다도 정결케 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더러워진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만남의 장소인 성막이다. 이것으로 죄의 중요도와 심각도에 따라서 순차적으로 처리된 것을 알 수 있다. 신약에서 죄와 그것을 정결하게 하는 피에 대한 언급은 거의 이 제사와 관련된 것이다 (벧전 1:2, 요일 1:7, 계 7:14, 히 9:12-14, 10:19-22).
(5) 속건제, '배상제', '보상제' (asham)
이 제사는 흔히 속죄제의 일종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의식, 제물, 제사의 조건등에 있어서 속죄제와 명확하게 구분된다. 이 제사는 '배상제(사)'(reparation offering) 혹은 '보상제(사)'(compensation offering)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죄를 지은 사람 대신에 다른 동물이 그 형벌을 받는 것을 나타낸다. 어떤 마땅히 치러야 할 빗이 갚아지는 것을 나타낸다. 이 빗을 사람에게 갚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짖는 모든 범죄는 다 하나님에 대한 것이므로 (시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하나님께 갚아야 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의 최초의 설명이 잘 알려진 사53:5("우리 대신하여"), 6절("우리의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리고 10절("그 영혼을 보상제물로 드림은")이다. 신약은 이 모습을 아주 많이 설명한다 (요12:38, 롬10:16, 마8:17, 벧전2:24-25, 눅22:37).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대신하여서 드린 완벽한 제사이므로 다시는 그 제사가 드려질 필요가 없다. 거기에서 다시 신자에게 적용된 것이 주기도문에 우리가 주께 사죄를 구하기 전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6:12). 이와 유사한 상업적 계산의 imagery가 마5:23-24나 눅19:8-9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런 제사들의 원리적인 의미보다 더 확대되거나 변용된 뜻들이 사용될 수도 있다. 또 이 제사들이 필요가 있을 때 대부분 하나만 드려진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가 섞여서 드려졌고 그 때에 각 제사의 원래의 의미에서 새로운 의미가 추가되기도 한 것 같다.
신약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이 제사들의 거의 대부분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우선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완벽한 희생과 죽음 자체로 드려짐은 구약의 번제로 상징되었다. 그리스도의 성만찬 예식에서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구약의 화목제의 특징에 가장 가깝다. 죄의 처리와 관련하여서 이 제사들을 생각할 수 있다. 번제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드러내며 하나님과의 화목이 목적이다. 그러나 속죄제는 그 죄가 완전히 정결하게 되어야 함을 나타내며 속건죄는 죄의 결과는 보상되어야 하고 그 보상으로 만족이 이루어는 지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혹자(Wenham)는 속죄제는 의학적인 관점에서 더러워진 성소가 청소되어서 다시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거하실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이 있으며, 보상제(속건제)는 상업적인 관점에서 빚이 갚아지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6. 죄의 용서
먼저 성경은 주로 부지중에 범한, 무의식중에 범한, 비의도적으로 범한 죄에 대하여 용서를 말하고 있다 (속죄제: 4:2,13,22,27; 속건죄: 5:14,18). 그러면 어떻게 의도적으로 범한 죄를 사하는가 ? 레5:14-6:7, 민5:6-8에 언급된 대로 정죄 후에 그 죄에 대한 시인과 자복의 과정이 중요한 전제였고 마지막으로 배상의 절차를 따라야 했다.
죄가 네 가지 경우로 나누어서 처리되었다: 1. 제사장이 범한 죄 (4:2), 2. 온 회중이 범한 죄 (4:13), 3. 족장이 범한 죄 (4:22), 4. 평민이 범한 죄 (4:27). 만약에 이것이 죄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특이한 면이 있다. 그것은 제사장의 죄가 온 회중이 범한 죄보다 더 중요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죄로 취급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범죄하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의 중보역할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7. 제물
제사인이 반드시 '빈손으로' 가져와서는 안 된다. 하나님 앞에 선물로 가져오는 것을 신약에서 바리새인들이 악하게 사용한 (막7:11) 단어인 '고르반'(q-r-b'드려짐')으로 표현되었다. 이 단어는 속건죄에는 네 가지 제사형태에 적어도 한번은 쓰였다. 레위기와 민수기 외에 이 단어는 구약에서 단 2회만 사용된 것을 보면 얼마나 이 단어가 레위기의 제사와 관련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흠이 없는' (tamim) 제물을 드려야 한다. 선지서에서는 외적인 청결함이 내적인 청결함과 일치되어야 하는 것을 선포한다 (사1:11-17, 호6:6, 암5:21-24, 믹6:6-8, 렘6:20, 7:1-15, 시51:16-17). 이 말은 또 반드시 내적인 청결함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외적인 선물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 책망되기도 한다 (말2:17, 1:6, 1:8b).이것은 장차 롬12:1-2에서의 완전한 산제사의 근본적인 배경이다.
각 사람의 재정적인 형편에 따라서 소 (1:3-5), 양 혹은 염소 (1:10), 새( 1:14)를 드릴 수도 있었다. 심지어는 소제에 쓰이는 곡물이라도 가난한 사람에게 번제에 해당하는 것이 될 수 있다 (Milgrom). 번제는 보통 죄를 씻는데 사용되었는데 죄를 씻기 위해서 피가 흘려져야 한다. 그러나 피가 흘려지지 아니하는 곡물로 드리는 소제가 그렇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한 처사는 지극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새조차도 드릴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이 사죄할 길을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죄의 정도에 따라서 소 (4:3,14), 숫염소 (4:23), 암염소 (4:28), 암양 (4:32), 혹은 새(5:7)를 드리기도 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서 무엇을 탈취한다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각 사람이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것 중에서 드리기를 원하실 뿐이다.
8. 제사인
여기서 제사인은 레위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일반을 가리키는 것으로 명칭을 정해보자. 이 제사인이 제사에서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
그들은 능동적인 제사인이었다. 제물을 준비하는 돈을 대고 제사를 드리려고 지원하는 '제사인'은 단지 제사장이 하는 것을 지켜보는 수동적으로 제사에 참여하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두 가지 차원에서 능동적으로 제사에 참여한다.
(1) 안수
먼저 그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는 희생제물을 드릴 때 그 동물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서 안수하는 것이다 (1:4, 3:2,8,13, 4:4,15,24,29,33). 비록 레위기는 안수하는 목적과 의미를 명확하게 규정하지는 않지만 안수가 축복과 관계되거나 (창 48:13-14), 저주와 심판을 의미하기도 한다 (레24:14). 그러나 제사에서의 안수를 가장 근접하여서 설명할 수 있는 본문이 민8:9-10이다. 모세가 레위인을 회중 앞에서 하나님 앞에 '바칠'(q-r-b, 신약의 고르반) 때에 백성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이것은 레위인들이 각 백성들의 장남을 '대신한다'(substitute)는 것을 의미한다 (민8:16,18). 만약에 이 의식이 동물에 손을 얹는 의식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면 동물에게 하는 안수는 동물들이 죄지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한다(substitute)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이 행동이 바로 백성의 죄가 동물에게 전가(transfer)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 예를 들면 대속죄일에 아론이 살아있는 양에게 안수를 하는데 이것은 죄가 그 동물에게 전가된 것을 볼 수 있다 (레16:21). 그러나 이 동물이 보통의 제사에서처럼 태워지거나 먹어지지 않았고 사막으로 보내졌다. 그러므로 동물이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는 (substitute) 것이 인간의 죄가 동물에게 전가된다는 (transfer) 것보다 자연스럽다.
(2) 동물을 죽이는 일
또 하나의 제사인이 하는 중요한 일은 동물을 죽이는 일이다. 이 일은 제사장이 직접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레1:5-6). 제의적인 죽임(ritual killing)의 결과 이 동물은 이제 산 것이 아니므로 오직 태워지거나 소비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제사인이 이 동물을 세속에서는 다시 쓸 수 없고 돌이킬 수 없이 오직 하나님께만 드린 것을 나타낸다 (R. de Vaux). 제사인이 또 제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그들이 죽인 동물의 가죽을 벋기고 머리와 기름은 벗겨내고 그 몸을 여러 개로 쪼개는 것, 즉 각을 뜨고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어서 제사장이 나머지 절차를 하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1:6,12-13).
9. 제사장의 역할
물론 제사장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1) 먼저 그들은 희생제물의 피를 모아서 외제단, 내제단에 뿌리거나 바르거나 한다 (1:5,11,15, 3:2,8,13, 4:5-7). 피뿌림의 의미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이다" (17:11).
(2) 깨끗이 준비된 (껍질을 벗기고, 피를 씻어내고, 내장을 씻고, 각을 뜨고) 제물을 번제단위에 올려서 태워야 한다(1:9,13,17, 3:5,11,16, 4:10,19,26,31,35).
(3) 제사장의 임직에 대한 명령은 이미 출29-30장에 주어졌다. 이제 그 명령을 수행하는 절차가 레8-9장에 소개되었다. 그 임직 받은 제사장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 (9:4,6,23). 이런 경험을 에스겔(겔1:28,3:23), 다니엘(단8:17), 바울(행전9:4), 요한(계1:17)과 같은 주의 종들이 했다.
(4) 잘못된 불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두 아들을 잃은 아론이 10장에 소개되었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논란이 많으나 제사의 정해진 법대로 행하지 않았을 때에 받은 벌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많은 것이다. 그리고 잃은 두 아들에 대해서 아론이 공적으로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10:6).
10. 깨끗함과 부정함 (11-16장)
레위기 11-16장은 육체적, 도덕적 정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 깨끗한, 불순한 동물 (11), 출산 시 처리 (12), 문둥병의 처리(13-14), 몸의 분비물의 처리 (15), 대속죄일 (16). 여기서 대속죄일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완벽하게 속하는 것을 나타내므로 1-16장까지의 결론과 같다고 할 수 있다.
(1) 우선 여기서 언급된 것은 과일과 야채가 아니라 오직 고기종류이다. 이것은 창1:29-30에 내린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에 대한 명령과 관계된다. 오직 대홍수 이후에 (창9:3-5) 동물을 먹을 수 있는 허락이 났는데 하나님의 백성에게 허락된 것이 무엇인가를 하나님은 이제 구체적으로 가르치려는 것이다.
(2) 깨끗한 동물과 깨끗하지 못한 동물에 대한 구분의 이유에 대해서 네 가지 설명이 제시되곤 한다. : 윤리적 (깨끗하지 못한 동물은 윤리적으로 악한 행동을 하게 한다), 심미적 (역겹게 느껴지느냐는 관점에서), 신학적 (이방인들이 터부(taboo)시 하는 동물이냐는 관점에서), 위생적 (인간의 신체에 유익을 주느냐는 관점에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실제로 제시된 기준들의 공통분모이다. 그것은 새김질하고 굽이 갈라진 것이어야 하고 물고기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 아마 종과 종의 구분이 명확한 짐승을 깨끗한 동물로 취급하며 두 가지 종에 공통으로 걸쳐있는 동물은 부정한 동물로 취급된 것 같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나라에 양다리를 걸치는 것에 대한 혐오를 포함하고 있는 것 같다.
11. 대속죄일 (16장)
대속죄일은 속죄일 중의 속죄일이다. 여기서 모든 이스라엘의 범죄가 연례로 한 번씩 완전하게 처리되며 성전이 영적으로 깨끗하게 된다. 대속죄일의 예식 중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뽑혀진 두 양이다.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고 하나는 아사셀을 향한 것이며, 이 후자는 결국 사막에 내보내져 그 곳에서 죽게 된다 (16:6-10). 그런데 이 중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사셀이 무엇이고 아사셀을 향한 것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것이다. 아사셀이 광야에 거하는 귀신이나 광야 자체 혹은 험한 돌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나 그 근본취지는 이스라엘의 죄가 철저하게 하나도 남기지 않고 처리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신약 특히 히브리서 9-10장에서는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자체가 이 대속죄일의 제사와 관련된 것으로 표현되었다 (마27:51, 막15:38, 눅23:45). 특히 그리스도가 죽을 때 지성소와 성소를 가리는 휘장이 찢어짐은 그리스도의 육신이 찢어짐으로 누구든지 담대히 지성소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히10:19이하).
그리고 이러한 완전한 속죄가 이스라엘이 할 마지막 축제인 장막절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 시기적으로 바로 이어져 있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추수를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리고 완전한 성결을 이룩하여야 한다는 점을 나타낸다.
12. 실제적인 성결의 유지 (17-25장)
이제는 1-16장에서 말한 대로 이루어진 거룩함이 이스라엘 속에서 어떻게 유지되어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앞에서는 주로 성막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고려하였고 이제는 성막주위 혹은 성막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고려하여서 말하고 있다. 그 주요 내용은 피를 먹는 것의 금지 (17), 성적 부도덕 금지 (18), 사회적인 금지사항 (19), 최중형을 받을 범죄 (20), 제사장 자신의 금지사항 (21), 제사물을 먹는 것에 대하여 (22), 삼대절기 (23), 성막과 신성모독죄(24), 절기(안식년, 희년: 25)로 되어 있다. 아마 성막과 신성모독죄에 대한 것이 삼대절기 바로 뒤에 나오도록 배치한 것은 삼대절기가 주로 성막을 중심으로 치우러지므로 이것에 대한 더 구체적인 규율들을 제시한 것 같다. 이것은 구조적으로 절기(안식년, 희년)에 대한 내용(25:1-34)이 그 절기와 관련되는 가난한 자와 동족 중에서 종 된 자에게 할 태도를 언급하는 것 (25:35-55)앞에 묘사된 것과 동일하다.
유월절과 오순절, 초막절, 그리고 안식년과 희년의 절기는 철저히 숫자 7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제사장적인 완벽한 구조를 보이고 하나님 나라의 완벽한 축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13. 축복과 저주 (26장)
이 부분이 여기에 나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에 흔히 이 부분을 원래 여기에 있지 않던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레위기가 독립적인 책이 아니라 출애굽기와의 연속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출애굽기 19-24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첫 언약을 맺었다. 그러나 그 언약이 유지되는데 필요한 모든 구조물들, 특히 성막에 대한 명령이 완전히 주어지기 전에 (출32장) 이스라엘은 타락하고 다른 신과 언약을 맺으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고 말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약회복내지 언약갱신을 하게 되었다 (출34장). 그리고 계속해서 언약의 구조물들을 만들 것에 대한 명령이 주어졌고 또 이행되었다. 그 근본적인 것이 어느 정도 만들어지고 난 뒤에 (출35-40장, 레1-25장) 그 동안 미루어 왔던 언약에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축복과 저주의 항목을 소개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첫 언약에서 (출19-24장) 저주의 부분이 없고 약속과 같은 축복만이 있는 것은 아직 이스라엘의 언약파괴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스라엘이 결정적인 실수를 이미 기록하였기 때문에 하나님 편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내용에 있어서도 축복에 대한 것은 3-13절까지이고 저주에 대한 것은 14-45절이다. 이것은 첫 언약에서 축복만이 있던 것과 현격한 차이를 이룬다. 하나님의 언약의 대상으로서 이스라엘의 한계를 명백하게 드러낸 것이다. 또 이 축복과 저주는 신명기에서 주어질 모압언약의 축복과 저주의 원형(신28장)이 되고 있다. 내용에 있어서 레26장보다 신28장이 더 구체적이고 발전적이며 자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4. 서원에 대한 규례 (27장)
이 장은 아마 앞장에서 언급된 축복과 저주가 서약과 관련되는 행동이므로 이것에 대한 보충설명을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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